AI숙고는 (주)이프가 제조 현장에서 AI 비전검사와 장비 제어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쓰면서 든 생각을 매번 테마 하나씩 정해 적는 자리입니다. 이번 테마는 지난 #6 에서 예고한 "AI 시대에 신입 개발자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입니다. 쉬운 일을 AI 코딩 에이전트가 가져가면, 그 쉬운 일로 실력을 쌓던 신입 개발자는 어디서 배워야 할까요.
지난 글에서 저희는 AI 가 코드를 짜도 개발자는 남는다고 썼습니다. 무엇을 만들지 정의하고, 결과를 검증하고, 책임지고, 현장과 코드를 잇는 일은 오히려 귀해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이 결론에는 불편한 뒷면이 있습니다. 그 네 가지 역할은 모두 경험이 쌓여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경험이 쌓이던 자리를 AI 가 먼저 차지했다면, 다음 세대 개발자는 어떻게 그 자리에 도달할까요.
쉬운 일은 원래 수업이었습니다
예전 신입 개발자의 첫 몇 달은 대개 비슷했습니다. 형식이 정해진 화면을 하나 만들고, 통신 메시지를 해석하는 코드를 짜고, 선배가 남긴 버그를 고칩니다. 지루해 보이지만 이 일들은 수업이었습니다. 반복 코드를 직접 치면서 언어와 구조에 대한 감각이 생기고, 버그를 고치면서 로그를 읽는 법과 의심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지금은 바로 이 일들이 AI 에게 가장 먼저 넘어갑니다. 저희도 반복 코드, 정형화된 변환, 테스트와 문서 초안은 거의 AI 에게 맡깁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하지만 신입 입장에서는 연습 문제가 사라진 셈입니다. 정답이 먼저 펼쳐져 있는 문제집으로는 실력이 잘 늘지 않습니다.
쉬운 일이 사라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쉬운 일 안에 들어 있던 배움이 함께 사라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배우는 자리는 '쓰기'에서 '확인하기'로 옮겨 갑니다
그렇다고 비관할 일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배움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위치가 옮겨 갔기 때문입니다. 예전 신입이 많이 써 보면서 배웠다면, 지금 신입은 정확히 확인하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저희가 실제로 겪은 일이 좋은 예입니다. 검사 장비의 판정 함수를 흉내 낸 같은 과제를 서로 다른 AI 두 대에게 맡겼더니, 둘 다 스스로 만든 테스트(13개, 21개)를 전부 통과했습니다. 그런데 서로의 코드를 교차 리뷰하게 하자 규격 값이 비어 있으면 조용히 OK 가 나오는 같은 맹점이 드러났습니다. 검사기에서는 불량을 양품으로 내보내는 통로입니다.
이 맹점을 찾아내는 눈이 바로 AI 시대 신입이 길러야 할 실력입니다. 코드를 처음부터 직접 쓰지 않았더라도, 그 코드가 어디서 틀릴 수 있는지 묻고 예외 입력을 넣어 직접 실행해 보는 과정에서 언어와 도메인을 함께 배웁니다. 첫 업무의 모양을 바꿔 보면 이렇습니다.
| 예전의 첫 업무 | AI 시대의 첫 업무 | 그 안에서 배우는 것 |
|---|---|---|
| 형식이 정해진 화면 만들기 | AI 가 만든 화면을 요구 조건과 한 줄씩 대조하기 | 요구 조건을 읽는 눈 |
| 통신 메시지 해석 코드 작성 | 빈 값 · 잘린 메시지 같은 예외 입력으로 AI 코드 시험하기 | 경계 조건에 대한 감각 |
| 선배가 남긴 버그 수정 | AI 가 낸 원인 후보를 로그로 확인하고 틀린 것을 기각하기 | 근거로 판단하는 습관 |
| 내 코드에 테스트 붙이기 | 다른 AI 나 사람이 만든 테스트를 돌려 보기 | 작성자와 검증자를 나누는 습관 |
신입에게 권하는 다섯 가지 습관
1. 설명할 수 있을 때만 받아들입니다
AI 가 바꾼 줄은 전부 읽고, 왜 그렇게 바꿨는지 말로 설명할 수 없다면 아직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읽지 않고 붙여 넣는 순간부터 그 코드는 내 코드가 아니게 됩니다. 처음에는 느리게 느껴져도, 이 습관이 나중에 맡을 수 있는 일의 크기를 정합니다.
2. 작은 것은 손으로 먼저 짜 봅니다
작은 함수 하나라도 AI 없이 먼저 짜 보고, 그다음 AI 의 답과 비교해 보기를 권합니다. 두 답이 다른 곳이 바로 내가 아직 모르는 곳입니다. 계산기가 있어도 암산 연습이 감을 지켜 주듯, 직접 짜 본 경험이 있어야 AI 의 답이 이상할 때 이상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3. 되돌리는 기술부터 익힙니다
Git, 테스트, 디버깅은 AI 시대에 오히려 더 중요한 기초 체력입니다. 저희 커리큘럼 글에서 첫 단계의 졸업 기준을 "망가진 코드를 Git 으로 이전 상태로 되돌리고 원인을 설명할 수 있다" 로 잡은 이유입니다. 되돌릴 수단이 있어야 AI 에게 더 크게 맡겨 볼 용기도 생깁니다.
4. 현장에 서 봅니다
저희 일은 코드가 카메라, 조명, PLC, 모터와 만나는 지점에서 끝납니다. 트리거 신호가 늦게 들어오는지, 진동으로 이미지가 흔들리는지, 케이블 노이즈로 통신이 가끔 끊기는지는 로그에 다 남지 않습니다. AI 는 로그로만 세상을 봅니다. 신입이 AI 보다 빨리 앞설 수 있는 곳은 화면 밖입니다. 실제 카메라와 조명을 만져 보고, 장비 옆에서 타이밍을 재 보는 경험을 일부러 찾으시길 권합니다.

5. 실패를 한 줄 규칙으로 남깁니다
틀린 것을 찾았다면 고치고 끝내지 말고, 원인을 한 줄 규칙으로 적어 둡니다. 저희는 이런 규칙을 프로젝트 지침 파일에 모아 두고 사람과 AI 가 같이 따르게 합니다. 신입이 남긴 규칙 한 줄이 팀 전체와 AI 의 실수를 함께 줄입니다. 경력이 짧아도 팀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선배와 회사가 해야 할 일
이 문제는 신입 혼자 풀 수 없습니다. 쉬운 일을 AI 에게 넘긴 것은 회사의 선택이니, 사라진 수업을 다른 형태로 돌려주는 것도 회사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 검증을 일로 줍니다 : AI 가 만든 결과의 리뷰어 자리를 신입에게 맡깁니다. 고치지 말고 문제를 표로 정리하게 하면, 선배는 그 표를 보며 무엇을 놓쳤는지 함께 짚어 줄 수 있습니다.
- 판단 이유를 말로 남깁니다 : 선배가 AI 의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기각할 때 그 이유를 한 줄이라도 남깁니다. 예전에는 옆자리에서 저절로 전해지던 감이, 이제는 적어 두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습니다.
- 권한을 단계로 넓힙니다 : AI숙고 #3 에서 에이전트의 자율성을 "제안만 → 승인 후 실행 → 자동 실행" 의 권한으로 나눠야 한다고 썼습니다. 신입에게도 같은 원칙이 맞습니다. 검증할 수 있는 범위만큼 맡기고, 신뢰가 쌓이면 넓힙니다.
신입을 덜 뽑으면 된다는 생각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24 인공지능산업 실태조사(과기정통부 ·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는 AI 개발자가 2,721명 부족하다고 집계했습니다. 사람이 이미 모자란 상황에서 다음 세대를 키우지 않으면, 몇 년 뒤에는 AI 의 결과를 판정할 사람이 없어집니다. 저희가 보기에 답은 덜 뽑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키우는 것입니다. 실제 머신비전 채용공고를 보면 학력 무관으로 현장 엔지니어를 뽑는 사례도 있습니다. 현장에서 시작해 개발로 넓혀 가는 길도 열려 있다는 뜻입니다. 진로 이야기는 지난 글 "AI 비전검사 일을 하려면 석사·박사가 필요할까" 에 따로 정리했습니다.
마치며 : 쉬운 일 대신 정확한 일
AI 시대의 신입은 쉬운 일을 많이 하며 자라기 어렵습니다. 대신 정확한 일을 하며 자랄 수 있습니다. 결과를 읽고, 예외를 넣어 보고, 현장에서 재현하고, 틀린 이유를 규칙으로 남기는 일입니다. 이것은 예전 신입이 몇 년 뒤에야 맡던 일이기도 합니다. 배우는 순서가 바뀌었을 뿐, 도달하는 곳은 같다고 믿습니다.
실천 순서가 궁금하신 분은 AI 사용법 글 "AI 활용 잘하는 개발자 되는 법" 의 단계별 커리큘럼을 함께 보시면 좋습니다.
다음 AI숙고 테마는 이번 글의 반대편입니다. "숙련자의 감은 AI 에 담길 수 있는가". 신입이 배울 자리를 이야기했으니, 이번에는 오래 일한 사람의 노하우가 AI 시대에 어디로 가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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